대한민국에 로동신문, 평양방송 복제판이 나돌고 있어
다른 누구의 말도 아니고, 한나라당 대선 경선시에 박근혜측에서 말한대로 전과14범을 대통령으로 뽑았습니다. 기업체에서 인재를 뽑기 위해서 이력서를 참고하고 자기소개서를 요구하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를 통해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 입니다.
전과14범에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건설회사를 망쳐 놓았다는 의심을 사고 있는 사람을 기업인들이 앞장서서 지지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기업문화가 얼마나 엉망인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이걸 보면 우리 기업들이 조직내 인재들의 능력으로 크기 보다는 부동산 투기나 꼼수로 더 발전해왔다는 것을 자인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본인재산을 사회환원하는 방법으로 재단을 설립한다 해서 하나같이 찬사와 찬양을 해대며 대한민국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화 하고 있는 언론의 모습을 이대로 보고만 있어야 할까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로동신문, 평양신문, 대동강신문처럼 보입니다. 이명박 찬양일색인 KBS가 김일성 김정일 찬양일색인 평양방송과 다를 게 없어졌습니다.
대통령이 현직에 있는데, 본인재산의 사회환원 방법을 재단설립의 모양으로 할 경우 닥치게 될 가까운 미래, 그리고 먼 미래의 형상에 대해 고심하지 않는 언론의 모습을 우리는 단세포 아메바처럼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나요?
육영재단, 정수장학회는 박정희 자녀들의 재산?
모르면 바보, 꼴통이라는데?
역사는 재단설립이 꼭 사유재산을 사회로 환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 시간에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설립한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가 그것 입니다.
법적으로 재단이 사유재산이 아님이 분명하지만, 육영재단과 정수장학회가 박정희 대통령의 자녀들인 근혜, 근령, 지만의 재산이라는 것을 모르면 바보천지라고, 세상 헛살았다고 손가락질 받습니다. 혹시 모르셨다면, 이 게시물의 아래로 차츰 내려가며 이해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재산은닉의 귀재, 이명박
청계재단을 만들어 그것이 자신의 재산을 사회로 환원하는 것이라고 우기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그리고 그 일당들, 역시, 재산은닉의 귀재이고 사술의 천재들입니다. 그 사실을 찬양하고 찬미하는 언론 역시 대중선동의 귀재이고 군중심리를 이용하는 대가들 입니다.
때에 맞추어 인터넷에는 어느 책 내용 중 한 페이지가 사진으로 나돌고 있습니다. "재산은닉의 귀재 이명박"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이미 재산은닉에 대해서는 이골이 난 분이라는 걸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벌써부터 인정 받고 있었던 것임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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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은닉의 귀재
이명박 의원
전국구 민자 행경위 초선 53세
「셀러리맨의 우상」이라 불리며 「중동신화」를 창조했던 이명박 의원! 그러나 우상도 돈에는 약했던지 민자당 재산공개가 있자 그에게는 조소와 질타가 퍼부어지고 우상은 서서히 파괴되었다.
그가 공개한 재산은 62억3천만원. 그러나 시가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을 뿐아니라 성실성을 의심케하는 고의적 은닉이 부...(중략)
크게 보기 http://goo.gl/eL9Zn
14대 국회전반
기자가 본 국회의원
(299의원의 시시비비)
제조회사 : 동아춘추사
판매가격 : 5,000원
적립금액 : 250원
동아춘추사 편,1993년초판,433쪽
판매처: 아이엔지북 바로가기 |
차떼기 세풍사건 주역 주정중, '청계재단' 감사로
100대 기업 목록 만들고 차떼기로 돈 걷은 혐의로 구속 전력
세계일보 | 박진우 기자 | 2009.07.08
세풍사건은 1997년 대선 당시 국세청과 차떼기 한나라당이 공모해 현대, SK, 대우 등 23개 재벌 대기업으로부터 166억3천만원을 한나라당 대선자금으로 불법모금한 사건...'청계재단’ 감사로 선임된 주정중 삼정컨설팅 회장이 15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이 국세청을 통해 대선자금을 불법 모금한 ‘세풍’ 사건에 연루돼 유죄판결을 받은 비리 공직자 출신인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파문...주정중씨는 당시 중부국세청장으로 2004년 4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추징금 2천500만원을 최종 선고
이명박 '청계재단' 설립은 법령 위반
대통령의 재단법인 설립이 욕먹어도 싼 이유
서프라이즈 | [HB]볼록Melchy | 2009.07.07
이명박의 큰사위인 이상주 변호사를 비롯하여 대통령 인수위원회와 정권에서 장관을 역임한 이들이 이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재단법인의 구성요건을 정한 '사회복지사업법'의 규정에 어긋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사회복지사업법에는 "출연자 이사들 간에는 특별한 관계에 있는 자"로 구성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으므로 청계재단은 설립 이전부터 법령위반...
이명박의 재산기부 사전기획 의심
Daum 아고라 자유토론 | 박형준 (월간 '말' 기자) | 2009.01.28
1996년 이명박의 비서였던 김유찬으로부터 나온 극비문서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플랜(PLP: President Lee Plan)"에 이미 기획의도 드러나. 주간조선 1996.09.26 보도로 이미 밝혀진 비밀...이 기사에 공개된 문건에 따르면 MB는 다음과 같은 대권도전 일정을 꾸렸다. 1. MB를 97년 대선 후보로 지명받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 2. 제 1의 목적이 여의치 않을 경우, 차선으로 가장 유력한 대권 후보를지원하여 98년 6월의 지방자치 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권을 획득하는 데 둔다. 3. 제2의 목적은 곧 2002년 서울시장 임기 직후 있게 될 대통령선거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도약하기 위함이다. 시차만 5년의 차이가 있을 뿐, MB는 이 일정 그대로 대권에 도전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렇기 때문에 이 PLP 문건은 나름의 현실감을 갖는다. PLP가 제시한 MB의 약점은 재산문제, 그렇다면 PLP는 어떤 돌파구를 제시했을까? "이 의원의 재산문제를 능동적으로 돌파하기 위해 재산의 사회 환원을 검토하고, 인간적 포용력을 보여주는 문제를 검토하자." 실제로 MB는 정계에 진출했을 때부터 재산문제로 인해 자주 구설수에 올랐다. 공직자 재산공개 당시 도곡동 땅을 은닉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며, 소유 토지를 공시지가보다 턱없이 낮게 신고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현대그룹 측에서도 “이 의원의 재산이 그것밖에 안되겠느냐”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 재미있는 것은 그때마다 MB는 재산을 헌납하며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것.
언론을 통해 본 박정희의 유산 - 육영재단, 정수장학회
지난 3월 5일 오전 이원우 육영재단 임시 이사장이 출근하려다 서울 광진구 능동 육영재단 정문 앞에서 노조원들로부터 달걀 세례를 받고 있다. ⓒ한국일보 조영호기자 사진
지난 3월 6일 한국일보와 AFP통신은 계란을 뒤집어 쓴 육영재단 임시이사장의 사진과 함께, 박정희 자녀들의 육영재단을 둘러싼 재산다툼을 간단하게나마 전세계로 보도하였습니다.
육영재단 끝없는 '남매 쟁탈전' 한국일보-AFP | 2009.03.06
육영재단은 법적으로 1969년 육영수 여사가 설립한 사회사업 목적의 재단 입니다. 표면적으로는 1982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이어 1990년부터 근령씨가 이사장에 취임하여 운영해 왔습니다. 하지만 근령씨가 자금을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는 이유로 2004년부터 소송이 이어져 지난해 5월 대법원 판결로 이사장직을 상실했습니다. 이 법정소송은 박근혜씨와 한패가 된 박정희의 아들 지만씨가 이끌었습니다.
이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정희 자녀들의 재산다툼을 지켜보면 재미있습니다.
박근혜씨와 연결되어 박정희의 신임을 받기도 했던 최태민. 그러나 월권과 청탁 등으로 당시 청와대의 골치덩어리였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사후에도 계속 대리인을 통해 운영하던 육영재단을 1982년 박근혜가 이사장이 되어 운영하게 됩니다. 그런데 박근혜씨의 옆에서 정체불명(?)의 최태민이라는 자가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이라 재산이 줄어들거나 전용되기도 합니다. 이에 근령양과 지만군이 한 패가 되어 재산 보존을 위해 당시 대통령이던 노태우에게 '상소(?)'까지 하며 육영재단에서 박근혜가 손을 뗄 것을 주문합니다. 당시 박정희의 유산을 지키기 위한 자녀들의 위기감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는 증거 입니다.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이 1990년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 오마이뉴스 | 2007.08.06
최태민씨에게서 근혜언니를 구해 주세요. 탄원서 기사 자세히 보기
"최태민씨, 언니 방패막이로 재산 착취
그의 손아귀에서 언니를 구출해주세요"
[단독 입수]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이 1990년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
오마이뉴스| 박상규 황방열 기자 | 2007.08.06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이 쓴 것으로 보이는 편지.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내는 것으로 최태민 목사의 전횡과 비위 그리고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와의 관계를 적고 있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 진정코 저희 언니(박근혜)는 최태민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합니다! 대통령의 유족이라는 신분 때문에 어디에 하소연 할 곳도 없고 또 함부로 구원을 청할 곳도 없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딸 박근령(현 육영재단 이사장)과 장남 박지만(현 EG 대표)은 1990년 8월 14일 한 통의 긴 편지를 썼다. 일종의 '탄원서'로 수신인은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다.
이 편지에는 고 최태민 목사의 전횡·비위를 주장하는 내용과 "저희 언니와 저희들을 최씨의 손아귀에서 건져 주십시오"라고 노 대통령에게 요청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편지의 분량은 A4용지 12장에 이른다.
이 편지는 박근령 현 육영재단 이사장이 직접 쓴 것으로 보인다. 실제 <오마이뉴스>가 전문 필적감정소에 의뢰한 결과, 지난 1990년 <가정조선> 12월호에서 보도한 박 이사장의 친필편지와 <오마이뉴스>가 단독 입수한 편지의 필체가 동일인의 것으로 밝혀졌다.
"최태민 옹호하는 언니 말 듣지 마세요"
특히 편지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와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를 서술하는 부분은 눈길을 끈다. 둘의 관계를 박 이사장의 주장대로 짧게 정리하면 이렇다.
"언니 박근혜는 최 목사에게 철저하게 속고 있으니 빨리 구출해 달라"
박 이사장은 편지에서 "(최 목사는) 순수한 저희 언니에게 교묘히 접근해 언니를 격리시키고 고립시킨다"며 "이번 기회에 언니가 구출되지 못하면 언니와 저희들은 영원히 최씨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의 장난에 희생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 박 이사장은 "우리의 소중한 언니를 잃고 싶지 않지만 저희들에게는 힘이 없다"며 "저희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각하 내외분 뿐"이라고 노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박 이사장은 노 대통령에게 문제 해결을 위한 한 가지 방법도 제시하고 있다. 최 목사에 대한 언니 박근혜의 우호적인 말을 듣지 말라는 것이다.
" 최씨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언니인 박근혜의 청원(최태민씨를 옹호하는 부탁 말씀)을 단호히 거절해 주시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묘안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 주셔야만 최씨도 다스릴 수 있다고 사료되며 우리 언니도 최씨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또 박 이사장은 "각하 내외분께서 언니인 박근혜를 만나 주신다면, 이 점을 최씨가 교묘히 이용해 우리 언니를 자기의 손아귀에 넣고 그 막강한 힘을 오히려 저희 유족 탄압에 역이용 할 것"이라며 "언니의 말 한마디면 최씨는 어떤 위기도 모면할 수 있고 또 어떤 상황에서도 구출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고 적고 있다.
"최태민 목사, 언니의 비호아래 치부"
편지의 한 부분. 박근혜 후보가 최태민 목사에 대해 우호적으로 말해도 듣지 말라고 적고 있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이어 박 이사장은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 없고 참아서도 안될 일이 눈앞에 닥쳤다"며 최 목사의 비위와 전횡을 장황하게 서술했다. 그 분량이 A4용지 5장에 이른다.
박 이사장이 편지를 통해 주장하고 있는 최 목사의 비위와 전횡은 자세하고 다양하다. 박 이사장은 크게 ▲금전 편취 ▲유가족에 대한 인격 모독 ▲부모님에 대한 명예 훼손으로 나눠 총 18개 항목으로 최 목사의 잘못을 노 대통령에게 고발했다.
특히 최 목사의 금전 편취는 언니 박근혜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박 이사장은 적고 있다. 박 이사장은 "최씨는 아버님(박정희) 재직시 아버님의 눈을 속이고 우리 언니인 박근혜의 비호 아래 치부하였다는 소문이 있다"며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자신의 축재 행위가 폭로될까봐 계속해 저희 언니를 자신의 방패막이로 삼아 왔다"고 주장했다.
박 이사장은 "(최 목사는) 유족이 핵심이 된 각종 육영사업, 장학재단, 문화재단 등 추모사업체에 깊숙이 관여해 회계장부를 교묘한 수단으로 조작하여 많은 재산을 착취했다"며 "지금은 서울 강남 및 전국에 걸쳐 많은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오마이뉴스> 등의 취재 결과, 최 목사의 막내 딸 최순실씨와 여섯 번째 딸은 현재 강남에 수백억 원대의 빌딩을 각각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최순실씨의 남편 정윤회씨는 박 후보의 입법 보조원을 지내기도 했다.
또 유가족에 대한 인격 모욕을 서술한 부분도 눈에 띈다. 박 이사장은 "(최 목사는) 경비원을 언니에게 붙여 우리 형제들과 완전히 차단시키고 있다"며 "이로 인해 우리 형제들은 서로가 지척에 있으면서도 만나지도 못하고 소식도 들을 수 없으며 전화 대화마저도 못하는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박 이사장은 부모님 명예 훼손과 관련 "최씨는 부모님의 유덕을 기리는 기념사업회를 형식적으로 만들어 놓고 이름만 '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여사 기념사업회'이고 실제 내용은 최태민 기념사업회로 전락되어 가고 있다"며 "언니 박근혜가 대표 이사권이 있다는 것을 최대한 이용해 그 배후에서 모든 것을 관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이와 같이 최 목사의 비위·전횡을 주장하며 "금전 편취나 비리 관한 사항은 철저한 조사를 통해 사회에 환원하면 되지만, 부모님의 명예 훼손은 사회와 국가 차원에서 철저히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최 목사 의혹의 실체 없다"
최 목사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로 가득한 이 편지 마지막에는 '박근영·지만'의 이름이 차례로 적혀 있다.
2006년 10월 26일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고 박정희 대통령 27주기 추도식에서 박 대통령의 2녀 근령씨가 늦게 도착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박지만씨는 1990년 12월 <우먼센스>와의 인터뷰에서 "큰누나(박근혜)와 최씨와의 관계를 그냥 두는 것은 큰누나를 욕먹게 하고 부모님께도 누를 끼치게 되는 것 같아 떼어놓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러나 이 편지가 실제로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전달됐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990년 12월 당시 <주부생활>을 비롯한 몇몇 여성지는 "박근령씨가 고위층에게 수십 통의 탄원서를 보냈다"고 보도하고 있어 청와대에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당시 육영재단에 깊이 개입했던 한 인사도 "당시 박근영씨가 직접 탄원를 썼으며, 박근영씨를 돕던 분이 이 글을 다시 정서해서 청와대에 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편지가 작성된 시기는 육영재단 운영권 문제로 박근혜 당시 이사장과 동생 박근령씨가 논란을 벌이던 때다. 당시 최 목사는 육영재단 고문을 맡고 있었다. 박근령씨와 숭모회라는 단체는 "최 목사가 박근혜 이사장을 배후에서 조정한다"며 최 목사의 퇴진을 주장했다.
박 후보는 1990년 11월 육영재단 이사장을 동생 박근령씨에게 넘겼다. 박 후보는 세상에 동생과의 불화설이 나도는 것을 우려해 "건강이 악화돼 심신이 피곤해 물러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당 시 박 후보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누구에게 조종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다"며 "최 목사는 청와대 시절 새마음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이로 1988년 기념사업회를 만들 때 내가 도움을 청해 몇 개월 동안 나를 도왔을 뿐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박 후보에게 최태민 목사와의 '과거사'는 최대 취약점 중의 하나다. 최 목사에 대한 의혹은 오랫동안 박 후보를 괴롭혀 왔다. 박 후보는 세상이 의혹의 눈초리를 보낼 때마다 최 목사를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박 후보는 지난 7월 19일 한나라당 국민검증청문회에서도 "내가 아는 한도에서 지금까지 최 목사에 대한 의혹의 실체는 없다"며 "만약 최 목사에게 문제가 있었으면 아버지 시대나 이후 정권에서 법적 조치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편 탄원서와 관련 육영재단 쪽은 명확한 입장 표명을 피했다. <오마이뉴스>는 수 차례 박 이사장과의 접촉을 시도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다만 박근령 이사장 비서관을 맡고 있는 문상철씨를 통해 간접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문 비서관은 "박 이사장은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 진행되고 있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 과거의 탄원서에 관해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기회가 되면 그때 가서 말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어 문 비서관은 "박 이사장은 요즘 같은 민감한 시기에 무슨 말을 해도 언니 박근혜 후보와 연결되기 때문에 말을 아끼고 있다"고 밝혔다.
편지의 마지막에 박근영, 지만의 이름이 차례로 적혀 있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편지의 마지막에 박근영, 지만의 이름이 차례로 적혀 있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박근혜의 남자 최태민을 다룬 '인사이더 월드'의 보도내용
박근혜의 남자 최태민은 당시 언론의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들은 드러내 놓고 다루지 못했다.
박근혜, 최태민 의혹 또 터졌다 한겨레 | 성연철 기자 | 2007.06.18
이후 동생 지만씨가 추천한 이들로 임시 이사진이 구성되자 근령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사무국장 직함으로 재단에 나와 출근 투쟁을 벌여왔다. 육영재단은 광진구 능동에 부지 약 13만 2,000㎡를 소유하고 있으며 개발시 최대 수조원대의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좌로 부터 박근령,서향희,박지만,박근혜, 오른쪽 사진은 박근령 신동욱 부부
박정희 가계도
박정희 상세 가계도 더보기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 벌금형 확정
대법원 3부(주심 이홍훈 대법관)는 22일 시교육청 승인없이 임대사업을 한 혐의(공익법인의 설립ㆍ운영에 관한 법률 위반)로 육영재단 박근령(52ㆍ여) 이사장과 재단에 벌금 1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 증거에 의하면 피고인들은 재단 운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감독청 승인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부동산 임대업을 강행했고, 원심 판시 임대행위 이전에도 승인 없이 부동산 임대업을 했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 이사장이 공익법인의 설립ㆍ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수익사업을 규제하는 4조3항이 위헌이라며 낸 위헌법률심판 제청도 기각했다.
이 법률의 4조 3항은 "공익법인은 목적 달성을 위해 수익사업을 하고자 할 때에는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사업마다 주무관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돼 있고 19조 1항과 3항은 4조3항 위반시 형사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4조3항은 공익법인이 무분별하고 부적절한 수익사업에 나서는 것을 억제하고 본래 설립 목적인 공익성을 유지하며 건전한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며 "승인 절차만 밟으면 수익사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여동생인 박근령 이사장은 2002년 7월 서울시 성동교육청의 승인을 받지 않고 서울 광진구 어린이회관 내 시설을 임대보증금 43억원, 월 임대료 6천500만원에 빌려준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ㆍ2심에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고 상고했다. 연합뉴스 2006.09.22
정수장학회는 5.16 후 일제 때 부정축재한 재산을 환수한다는 이유로 부일장학회의 재산을 박정희 일당이 강탈하여 마련한 법인이다.
근혜-지만과 근령 사이에 직원들이 대리해 치르는 재산싸움으로 난장판이 된 육영재단 사무실
근혜-지만과 근령이 앞세운 직원들이 서로 상대 직원의 출근을 저지, 방해하고 있다.
7건의 혐의로 정용희(박지만 비서실장), 박용철(박근혜 조카), 오우제, 조락기, 박상목, 장운선(한센인), 최광현(한센인) 7명 기소처리 2009.04.27
영남대 비리, 육영재단 비리, 정수장학회 탈세 의혹 등
박근혜-근령-지만의 재산다툼으로 난장판이 된 육영재단
정수장학회 관련 뉴스
정수장학회 어떻게 운영되나
문화방송과 부산일보서 돈 받아 장학금 지급, '박정희 사람들' 요직에
한겨레 | 김남일 기자
차떼기 홍준표 "박근혜, 정수장학회 재산 등 국가에 헌납하라" - 오마이뉴스 2007.06.29
일요시사 박근혜 발목 잡는 정수장학회 2004.08.12 447호
“정수장학회는 강탈한 재산 토해내야” 한겨레21 2007.06.08 제663호
박근혜 친인척을 보시오 보기
박근혜의 친인척을 보시요
대한민국을 19년간 떡 주무르듯이 가지고 놀고, 동서남북 찢어서 국민들 가슴에 상처를 주고, 수많은 사람들을 눈물 흘리게 하면서, 죽는 순간까지 권력을 놓지 않았던 그 명문 박정희 가문에 대해 알아보자.
어쨌든 박정희는 불법적인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한 후, 탈취한 권력을 악용해 끊임없이 추악하게 정권 연장을 하면서 죽는 순간까지 최고권좌에 앉아 있었다.
물론 그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가문도 엄청나게 번성시켰다.
무슨 박정희가 검소하고, 역대 가장 청렴한 대통령이고, 친인척을 멀리했다는 소리들을 그렇게 하는데 다 거짓말이다. 죽을 때까지 이 나라에서 천황으로 살았는데 무슨 소리하는 건가? 정수장학회 얘기는 듣지도 못했나?
그 문란했던 사생활을 보고도 검소하고 청렴하다는 얘기를 그렇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나? 친인척을 멀리하기는 뭘 멀리해? 쓸 수 있는 사람은 다 끌어다 한 자리씩 줬다.
당시 박정희 친인척비리가 불가사의하게도 하나도 없었다는 얘기를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있어도 잡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는 걸 몰라??
우선 박정희의 딸 박재옥부터 알아보자. 사람들이 박근혜가 큰 딸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박재옥이다. 박재옥은 박정희의 첫째 부인 김호남이 낳은 딸이다. 박재옥은 한병기라는 사람과 결혼했다.
한병기는 1931년 평남 안주 출신이다. 홍익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박 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집권을 하자마자 불과 30살의 나이에 별 경력도 없이 주뉴욕총영사관 영사가 되었다. 35살의 나이에 건설공제조합 이사장이 되기도 했다. 선주협회 회장을 지내고 박정희 시절 설악관광케이블카 회장이 되어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유엔대사, 캐나다대사를 역임하기도 하고, 공화당 총재특보를 지내기도 했다.
박정희가 죽자마자 권력에서 멀어졌다. DJP연대로 사촌 동서인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득세하자, 방송개혁위원회 위원, 국무총리 자문위원장이 되는 등, 조금 고개를 들었다.
이래도 박정희가 친인척을 멀리한 건가?
그 다음에 박정희의 형 박동희의 아들 박재홍을 보자. 그러니까 박정희는 박재홍의 작은 아버지다.
1941년 경북 구미 출신이다. 대구상고, 고려법대를 졸업하였다.
28살의 나이에 포항제철 행정실장이 됐고 32살의 나이에 동양철관 회장이 되었다. 이거 정상적인 건가??
민정당, 민자당에서 국회의원을 4번씩이나 해 먹었다. 그 후 자민련으로 갔다가 다시 한나라당으로 갔다가 국민회의로 건너오는 등 이상한 정치행각을 보여주었다.
또 박정희의 또 다른 형 박상희의 아들 박준홍을 보자.
1947년생이다. 경북 구미 출신이다. 계성고, 경희대 정외과, 미국 조지워싱턴대를 졸업하였다. 김종필의 부인 박영옥이 박준홍의 누나다.
불과 서른 살의 나이에 1급 관리관 정무조정실장이 되었다. 요거 요즘같은 대명천지에 가능한 얘긴가? 그러더니 32살 때 그 막강한 대한축구협회장이 되었다.
박정희 사망으로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 방황하다가 매형 김종필이 만든 자민련에 들어가서 지금도 자민련 경북 구미갑 지구당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촌형인 박재홍과 맞붙기도 해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박정희의 친인척 가운데 쓸만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안 썼을 뿐이지 쓸만한 사람은 다 갖다 썼다는 걸 알 수 있다.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의 오빠, 그러니까 박근혜의 외삼촌인 육인수 같은 경우에도 학교 교사로 있다가 박정희가 쿠데타에 성공한 후에 승승장구하면서 5선 의원 씩이나 지낸 거 아닌가?
그 육인수의 사위 이석훈은 청주 MBC 사장을 지내고, 충청일보 사장을 거쳐서 현재 일신산업 회장이다.
김 종필 같은 경우에도 박정희가 끔찍이 생각했던 형 박상희의 딸인 박영옥의 남편 아닌가? 박정희의 처조카 김종필이 이후락 등과 함께 80년 신군부에 의해서 부정축재한 재산이 환수조치됐는데 그 총 규모가 887억원이다. 25년 전에 887억원이면... 이건 계산이 불가능한 돈이다.
이래도 박정희가 깨끗하고 청렴한가? 그걸 몰라서 가만히 놔 둔 건가? 박정희 개인은 절대권력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축재할 필요가 없었을런지는 모르겠다.
박정희 덕이 아니라면 박근혜가 어떻게 정수장학회를 지배하고 있나? 정수장학회가 말이 장학회지, 그 규모가 1조 300억원에 이른다. MBC의 30%가 정수장학회 소유다. 부산일보도... 경향신문 사옥 부지도.
박정희의 또 다른 딸 박근영(박서영으로 개명)은 또 어떻게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나? 육영재단도 수천 억원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이 무슨 수로 코스닥에서 한방에 46억원 짜리 대박을 치나?
이게 청렴한 대통령의 표상이라는 박정희의 모습이다.
게다가 시골에서 농사만 지었다던 박정희의 형 박동희의 딸 박재선을 의사와 결혼시키고, 형 박상희의 둘째 딸 박계옥의 남편 김용태를 그 막강한 대통령 경호실에서 근무하도록 했다.
그 뿐이랴!!!!
박상희의 세째 딸 박금자를 총리실에서 근무하는 반기언과 혼인시키고, 결정적으로는 박상희의 막내 딸 박설자를 벽산그룹 창업자 김인득의 아들인 김희용과 결혼시켰다. 김희용은 현재 벽산계열인 동양물산기업 대표이사 회장이다.
이 박설자로 말미암아 박정희 집안이 드디어 그랜드 서클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 박정희의 조카 박설자의 남편 김희용의 형 김희철이 현재 벽산그룹 회장이다.
김희철의 부인, 그러니까 박정희 조카 박설자의 동서가 바로 LG그룹의 한 축인 삼양통상의 창업자 허정구의 딸 허영자다. 이 허영자의 조카사위, 그러니까 허영자의 남동생의 사위가 바로 조선일보 후계자로 알려진 방준오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방향으로 한번 가보자. 참 웃기는 거 발견했다. 박정희 조카 박설자의 동서인 허영자의 오빠가 현재 삼양통상 회장인 허남각이다.
이 허남각의 딸 허정윤이 얼마 전에 정대호라는 청년과 결혼을 했는데 이 정대호가 그 유명한 황해도 재령의 대지주의 아들인 강원산업 창업자 정인욱의 손자이자, 현재 강원산업 회장인 정문원의 아들이다.
이 정문원의 부인 최금자의 언니가 최금숙이다. 최금숙이 누구냐? 바로 얼마 전에 형제의 난으로 물러난 두산그룹 회장 박용오의 부인이다.
게다가 정문원의 동생이 정도원인데 정도원에게 두 딸이 있다.
큰 딸 지선이는 기아자동자 회장인 정의선과 결혼했다. 정의선은 누구냐? 현대자동차 정몽구의 회장의 외아들이자 정주영회장의 손자다, 이 말이다.
작은 딸 지윤이는 박성빈이라는 청년과 결혼했다. 이 박성빈은 또 누구냐? 포항제철 박태준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이 말이다.
그러니까 포철 박성빈이랑 현대 정의선이랑 동서가 된다. 따라서 현대그룹이 철강산업을 하려고 부지까지 선정하러 다니다가 포기한 배경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이 박성빈을 좀 파헤쳐보면 아주 재밌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서 여러분들에게 미안해진다. 양해 바란다.
박성빈은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있다가 요즘 무슨 통신 솔루션 업체인 사운드파이프 코리아 대표이사로 있다.
이 회사를 가만히 보니까 무슨 다국적 기업인 것 같은데 국내 대리점을 영업하는 듯 하다. 전자신문같은 걸 보면 꽤 잘 나가는 듯 하다. 잘 나갈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사운드파이프에서 무선랜 환경을 구축했다는 아산병원은 현대 계열 아닌가??
박성빈도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 박태준이 국무총리직에 있을 때 드러난 박성빈의 부동산만도 강남구 역삼동의 170평짜리 카센터와 강남구 신사동의 빌딩 등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한남동에 빌라도 있었다.
여기서 멈추면 고구마 줄기라고 할 수 없다.
박성빈의 매형 김형수를 주목해야 한다. 김형수는 박태준의 한국화가 딸 박유아와 결혼을 했는데, 박유아는 본래 변호사 고승덕과 살다가 헤어졌다.
이 김형수는 또 이력이 만만치 않다. 한국맥도널드 사장과 국내에서 일본 도요다 자동차 렉서스를 수입판매하는 렉서스 케이모터스 대표이사다.
그런데 이 김형수의 부친이 그 유명한 동일고무벨트 창업자인 김도근이다. 이 김도근의 이력을 가만히 살펴보면 정치지향적인 것이 분명하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등등 골 때리는 이력이 꽤 많다.
문제는 김도근의 큰 아들이자 김형수의 형인 김진재다.
기 업을 경영하면서 박정희시절부터 여기저기 부산지역을 마구 쑤시고 돌아다녔다. 청년회의소니 부산 싸이클 연맹이니 뭐니 닥치는대로 자리라는 자리는 마다하지 않았다. 총력안보 부산시 협의회 특별위원,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부산시 청소년 선도위원도 맡았다.
부산 동래구 새마을지도자연합회 고문직도 맡았다.
열심히 하면 위에서 알아보는 법, 전두환이 급조한 민정당 간판을 달고 11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막론하고 내리 5선의원이 되었다.
미국과 멕시코발 '인플루엔자A'가 확산되자 국산 돼지고기 홍보현장에 시식하는 한승수(현 국무총리) ⓒ시사프라임
이 김진재의 아들인 동일고무벨트 기획이사 1972년생 김세연이 그 유명한 춘천 한승수의 딸 한상은과 결혼을 했다. 그러니까 왜 한승수가 무소속으로 있다가 뒤늦게 또 다시 한나라당으로 들어갔는지 답이 나온다.
그 런데 이 괴상한 상황을 우리 여러분들이 알아야 한다. 이 한승수가 박정희의 부인인 육영수의 조카 사위다. 한승수의 장모가 육영수의 큰언니 육인순이다. 그러니까 박근혜에게 한승수는 사촌 형부다. 한승수의 장인은 일제 만주국에서 관리를 지낸 홍순일이다.
이 박정희의 동서 홍순일의 사위들이 세명이나 국회의원이 됐다. 예전에 서주산업이라는 회사에서 나온 혓바닥 시뻘겋게 되는 아이스 바를 다들 먹어 봤을거다. 그 서주산업의 회장이 바로 국회의원을 지낸 홍순일의 다섯째 사위 윤석민이다.
한승수의 부인인 육영수의 조카 홍소자가 혜원여고 교장을 지냈는데 알아보니까 혜원여고 이사장 윤석민의 처형이네?? 헐... 신문에는 그런 관계가 안 나와서 참 재미가
또 만주지역에서 엄청나게 크게 농장사업을 벌였던 천재라는 장덕진이라는 사람이 육영수의 언니 육인순의 사위다. 이 사람은 박정희정권하에서 장관도 지냈다. 분명히 장덕진과 한승수가 춘천고 동문으로 친분이 있어서 동서가 된 거 같다.
전국민이 뻔질나게 소풍가는 한국민속촌 회장 정영삼도 육인순의 사위로서 육영수의 조카 사위다.
어쨌든 이렇게 오만가지 요직은 다 해 먹었는데 무슨 박정희가 친인척을 등용하지 않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한승수의 아들 한상준은 얼마 전 이희현이라는 아가씨와 결혼을 했다. 내가 깊이 파보니까 이희현의 아버지, 그러니까 한상준의 장인은 유니드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이화영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 가보다 하고 있었는데 웬걸??
이 이화영이라는 사람이 마지막 개성상인이니 뭐니 하면서 언론에서 띄워주는 성북동에 사는 동양제철화학그룹 명예회장 이회림의 아들이었다. 다들 봐서 알겠지만 ITV 폐업할 때 그 모습이 마지막 개성상인의 모습인가?
내가 그동안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 후원회장 이회림이 왜 그랜드 서클 안에 안 들어오나, 의아했다. 그러니까 이회림과 한승수가 사돈을 맺은 거다.
어 쨌든 한승수같이 유엔총회 의장까지 지낸 학벌 좋고, 경력 좋은 사람이 부인까지 데리고 가서 박정희를 추모하고 애도하고 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 깜빡 속아넘어가겠다. 여러분, 한승수는 박정희의 조카사위에요, 조카사위!!!!!!!!!!!!!!!!!!!!!!!!!!!!!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아까 언급했던 박태준의 사위 중 튀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박태준의 딸 가운데 디자이너인 박경아가 있는데 전두환의 아들 전재용과 이혼을 하고, 김병주라는 사람과 결혼을 하였다.
김병주는 1962년생인데 얼마 전까지 미국 칼라일 그룹 아시아지역 회장 겸 이사였다.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를 졸업하였다.
김 병주는 국민의 정부시절 자민련이 연정을 할 즈음 박태준이 총리가 되기 직전에 칼라일 코리아 사장이 되었다. 김병주는 쌍용정보통신을 꿀꺽 하더니, 5000억원을 쏟아부어 한미은행을 먹었다. 하나은행마저 잡아먹기 위해 공을 들였다.
한미은행을 4억달러에 사서 씨티 은행에 27억달러에 팔아먹었다. 물론 그 이익은 미국 칼라일의 몫이었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외국계 인사로 초대된 것으로 봐서 한국인이기 보다는 미국인으로 추정된다.
요 즘 칼라일 간부 5명과 `MBK 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를 만들어서 돈을 긁어 들이고 있다. MBK는 마이클 병주 김의 약자다. 싱가포르 정부투자기관에서 5억 달러를 끌어들였고, 캐나다 교직연금에서 2억 5천만 달러를 끌어들였다. 삼성생명, 대우정밀 등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 인물은 민주개혁세력이 끊임없이 눈여겨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로 다시 돌아가자.
지금 청렴하다는 박정희의 둘째 형 박무희의 아들 박재석은 연필장사를 하다가 박정희 덕분에 국제전기기업 회장이 되었다. 자민련 부총재를 지냈던 조부영같은 사람이 거기 이사출신인 걸 보면 대단한 은혜를 입은 거다.
게다가 박무희의 또 다른 아들 박재호는 벽돌공장에 다니다가 박정희가 집권한 후 동양육운 회장이 되었다.
상전벽해도 이런 상전벽해가 있나??
박정희가 친인척에게 엄했고 공사구별이 철저했다는 소리는 다 뻥이다. 말이나 못하면 얄밉지나 않겠다. 이상과 같이 해 줄만큼 다 해주고 해먹을 만큼 다 해 먹었다.
박정희는 어떻게 부정축재를 했는가? 더보기
박정희는 어떻게 부정축재를 했는가? 작자미상
박정희가 청렴했다 라고 믿으시는 분을 오늘 불펜에서 보았습니다. 제가 종종 느끼는 건데 많은 젊은 분들이 정말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는지 모르시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증권파동이라거나 김성곤(SK)이라거나.. 모르시니까, 박정희는 청렴했다 라는 조중동의 창작 동화를 그대로 믿습니다.
60, 70, 80년대에 뭐가 있었는지
왜 사람들이 박정희, 전두환을 욕하는지 모르니까 납득도 안되고, 쟤들은 원래 불평불만분자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박정희가 경제를 일으켰다는 게 어떻게 일으킨 것인지 잘 모르고, 독재를 했다는 데 어떻게 독재를 했는지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억눌렀나 보다. 혼자 오래 해먹어서 독재라고 하나보다 정도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몇가지만 적어보려고 합니다.
박정희가 우리나라 경제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부인하지 않습니다. 맞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박정희가 일으켰다고 말하지 않고, 우리 아버지 삼촌 세대가 땀흘려 일한 게 나라를 일으켰다고 말하는 쪽입니다. 그 이유를 말씀드릴께요. 이 글에서는 더도말고 딱 박정희 집권기간 중에서 초기 5년만 다루겠습니다 (1961년~65년).
이승만 정권이 14.19로 무너집니다. 그게 1960년입니다. 4월에 4.19가 일어나고, 새로 선거가 치뤄지고 8월에 장면 정부가 들어섭니다. 장면 정부는 5달뒤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하는 데(1961.2), 이게 나중에 박정희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됩니다.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경제개발을 하려해도 돈이 있어야 뭘 하지요. 장면 정부는 돈 나올 곳을 찾아 고민했는 데 불과 3달뒤에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끝납니다.(1961.5.16)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것은 장면정부가 무능하고 사회가 혼란스러워서였다 라는 것은, 사실 구라가 좀 섞인 것입니다. 정부가 수립되고 9개월만에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는 데, 부패할 겨를이나 있었습니까. 박정희가 말한 사회혼란은 4.19를 의미하는 거죠. 4.19터진 후에 이승만 규탄하는 집회가 열리고, 노동자들이 억눌렸던 게 풀려나면서 몇달 동안 데모가 많았었습니다. 장면 정부가 들어선 다음에 줄어들었습니다만, 그 몇달동안의 데모를 갖고서 사회가 혼란스러웠다 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박정희는 쿠데타로 정권 잡은 다음에 사회 곳곳을 장악하는 데 2년을 보냅니다.
5.16후 이틀만에 국가재건최고회의 라는 것을 설치하고 자기는 의장이 아니라 뒤에 실세로 앉습니다. 두달뒤(7월) 의장으로 앉혔던 장도영을 숙청하고 자신이 의장이 됩니다. 이 국가재건최고회의라는 게 어떤 곳이냐 하면,
걔네들이 발표한 국가재건최고회의법에 따르면, 입법, 사법, 행정 3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재판이 필요없이 자신들이 잡아들여 사형 이라고 판정하면 사형집행 되는 겁니다.
이러이러하게 한다 라고 회의에서 결정하면 그게 법이 되는 거구요.
"뭐, 뭐, 해!"라고 말하면 행정명령이 되는 겁니다.
어떤 건지 감이 오시죠.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뭘 했느냐. 부자들 잡아다 가두고 정수장학회, 영남대학교 등을 강제로 뜯어냅니다. 이걸 뜯어낸 부하인 신직수는 상으로 검찰총장을 시켜주고요, 경찰, 군대를 장악합니다. 인사명령을 내려서 싹쓸이로 사람을 갈아치우죠.
그리고 1963년 선거를 치릅니다. 박정희가 국민 선거로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뭔가 이상한 거 못느끼십니까? 체육관 선거가 아니라 일반 국민 선거를 치른 겁니다. 전두환도 일반 선거로 하면 자신이 떨어질까봐 자신이 지정한 2,500명만 투표할 수 있다고 정해놓고 걔들을 체육관에 모아다가 99.9%득표율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 시절에도 용자는 있었는지 반대표 1표가 있었다고 합니다. ;;)
그런데 박정희는 국민 선거를 치뤘습니다. 어떻게? 떨어지면 어쩔려구?
주목해야될 게, 박정희는 이승만 정부의 자유당을 없애고 스스로 당을 창당했다는 점입니다. 민주공화당을 급조해서 창당하고 자신이 총재가 되어 선거가 나왔습니다. 생소한 당을 만들어 나온 군인이 바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게 민주적으로 되었으리라 믿는다면 당신은 순진한 사람입니다.
당연히 부정선거 의혹이 엄청났습니다. 쿠데타로 장악한 상태에서 선거를 치뤘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었는데, 박정희의 개혁정책에 감동받은 국민들이 밀어줘서 박빙의 차로 윤보선을 이기고 대통령이 되었다... 이걸 믿는 분들을 볼때면 저는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런 드라마 스토리를 어떻게 믿을 수가.. ^^;;;
공화당을 창당하기 위해 박정희는 돈이 필요했었습니다. 1963년 증권조작을 크게 저지릅니다.
박정희는 1963년 대통령 된 이후, 경제개발 정책을 추진합니다.
그런데 역시 문제는 돈.
종잣돈이 없는 데 경제개발이 될 리 만무합니다.
그래서 1년만에 나선 것이 한일수교입니다(1964). 일본과 외교를 맺는 데 돈이 왜 나오는가.
일본에게 징용/징병 끌려간 사람들 월급하고 목숨값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었으니 미안해서 돈을 준거다. 내지는 단절된 외교관계를 복구하는 댓가로 돈을 받은 거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 데,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일본은 자신들이 한국 점령했던 것을 미안해 하지 않는 나라이고, 그때는 제국주의 시대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나라입니다. 일본이 했다는 사과는 '유감이다' 이지 '미안하다'가 아닙니다. 일본이 우리에게 한일수교로 준 돈은, 미안하다고 준 돈이 아니라, 끌려간 한국 사람들 월급하고 목숨값이었습니다.
일본이 징용 피해자들에게 직접 지급하겠다고 하자, 박정희는 이 제안을 거부하고 한국정부가 받아서 대신 지급하겠다고 하고 돈을 받아갔습니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은 이런 사실을 감추고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일본이 식민지 지배가 미안해서 '한국 정부'에게 준 돈이라고 말했습니다..
박통은 이 돈을 징용간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채서 쓸 생각이었습니다.
이 돈이 징용 월급과 목숨값이라고 알려지면, 징용갔던 사람들에게 돈을 줘야 합니다. 박정희는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경제개발계획에 쓸려고 받아낸 돈인 데, 왜 나눠줍니까.
박정희가 한 발표를 우리 국민들은 믿었고, 이 거짓말은 이후 40년간 유지됩니다. 2005년 43년만에 공문서가 공개되자 진실이 알려졌고, 노무현 대통령이 대신 나서서 뒤집어씁니다. 국가의 잘못이니, 징용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보상금을 지급하겠나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미 대부분이 죽고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52&aid=0000089570&
당시는 일본에 끌려갔다 돌아온 국민들이 생존해있던 시기입니다. 일본과 외교를 맺는다고 하자 전 국민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박정희는 계엄령을 내리고 전국 학교에 휴교령을 내립니다. 이명박이 자신도 한 때 운동권이었다 라고 말하는 게 이 것으로, 학생들이 한일수교 반대 데모할 때 자신도 한 몫 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국민들의 반대는 군경으로 진압하면서, 박정희는 한일수교를 강행합니다. 다음해(1965. 8)에 협정이 맺어지고, 이에 따라 일본 차관이 들어오게 됩니다. 일본은 배상금이라는 단어를 거부하고 차관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3억 달러는 무상으로 그냥 받기로 했고, 차관으로 2억 달러가 들어왔습니다. 여기에 추가로 민간차관 1억 불이 들어옵니다.
자, 그럼 무엇이 문제인지 아실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남이 받을 채무를 가로채서 자신이 쓴 것입니다. 징용끌려간 국민이 받을 돈을 국가가 가로채서 쓰고, 그 국민들은 아무것도 모른채 가난속에서 죽어갔습니다. 수십년동안 우리 국민들은 일본법정에 가서 징용 월급 내놓으라고 숱하게 재판을 걸었습니다. 그때마다 한일협정으로 일본의 책임이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으나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누가 이미 그 돈을 받아다 써버린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반론도 있습니다.
징용간 국민들이 직접 받은 것은 아니지만, 경제개발에 쓰인 돈이다. 나라를 위해 쓰인 돈이고, 경제개발의 혜택을 전 국민이 받았으니 간접적으로 돌려받은 것이다.
죄송하지만, 이 논리를 타파하는 증거가 있습니다. 박통이 이 돈을 재벌들에게 나눠주고, 뇌물을 받아먹었던 것입니다. =_=
1965년 우리나라 1년 예산이 3.5억달러이던 시절에 6억 달라가 들어왔습니다. (무상 3억, 차관 2억, 민간차관 2억)
엄청난 돈입니다. 당시 일본의 외환보유고가 9억달라 였다고 하는 데, 일본으로서도 자신의 외환보유고를 탈탈 털어 우리나라에 징용값을 치른 것입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은행금리는 매우 높았습니다. 지금도 동남아 국가들 가보면 은행금리가 우리나라보다 쎄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일년에 대출 금리가 17~25%하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일본에게 이자 3.5%로 돈을 빌려와 7~8%에 기업들에게 빌려줬습니다. 은행, 재벌, 기업 할 것 없이 이 차관만 받으면 은행이자와 차익만도 엄청났기 때문에 미친듯이 몰려들었습니다. 이 열풍 속에서 박정희는 기업들에게 누구 누구 에게 이 차관을 빌려줄지 뇌물을 먹고 결정했던 것입니다. 커미션으로 4~10%씩 뗐습니다. 대일차관은 10년에 걸쳐 들어왔기 때문에, 두고두고 우려먹을 수 있었습니다.
http://mahru.servebbs.com/zbxe/Board_Free/7403
이 업무를 맡았던 것이 김성곤 공화당 재정위원장입니다. SK로 불리며 공화당 실세 4인방으로 꼽히던 김성곤은 기업들에게 차관을 배정하고 커미션을 떼어 박정희의 정치자금을 마련했습니다. 박정희가 밑에 국회의원들에게 나눠주는 돈, 공화당 지부에 내려보는 돈,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 뿌리는 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김성곤은 나중에 박대통령이 2인자 만들지 않기 위해 숙청작업할 때 숙청되었습니다.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차관은 경부고속도로를 만드는 데에도 쓰였고, 포항제철 만드는 데에도 쓰였습니다.
저는 이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대일차관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적은 이 모든 것들을 아신다면 박정희의 공이라 해 주기 뭣합니다. 그 돈은 징용 끌려갔던 국민들이 받았어야 하는 돈인데 박정희가 가로챈 것이었고, 국가 경제개발에 투입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는 기업들에게 커미션을 받아 자신이 썼기 때문입니다. 정치자금으로 썼을 뿐, 개인이 축재를 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하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식들에게 넘겨준 정수장학회나 육영재단 등은 엄연히 부정축재한 것입니다. 민간인을 잡아다 짜내어 강제헌납받고 자신의 가족에게 넘긴 것입니다. 박근혜의 재산은 얼마인지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MBC의 자산을 약 3조원으로 잡고, 정수장학회가 그 30%지분을 갖고 있으므로 1조원이라 칩시다.
정수장학회 자체 기금은 200억 정도라고 합니다. 이것만 해도 1조를 넘습니다. 참고로 포브스 지에 등재된 한국의 부자들 순위를 보면, 이 금액은 10위 정도에 해당합니다. 삼성 이건희, 현대 정몽구 보다는 적고, LG 구본무 회장(1.45billion)과 SK최태원 회장(0.99billion) 사이에 있습니다.
그러니 박정희는 청렴했다는 소리는 제발 안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강탈해서 딸에게 물려준 게 LG 재벌 급인 데, 어떻게 개인축재는 안했다. 청렴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증권조작 벌여서 창당 자금 마련한 사람입니다.
징용 목숨값을 받아와, 기업들에게 나눠주면서 뽀찌를 뜯은 사람입니다.
저는 일본 차관이 우리나라 경제개발에 공헌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박정희가 결정한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 우리 산업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돈은 우리 할아버지들이 일본끌려가서 목숨을 바친 징용 목숨값이었고, 그걸 키워서 경제개발을 이룩한 것은 우리 아버지들이 70년대 땀흘려 일해서 이뤄낸 결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늘 얘기는 여기서 끊을까 합니다.
맑은 하루 되세요.
한국의 명문가문 제 9편 "박정희가" 보기
한국의 명문가문 제 9편 "박정희가"
서프라이즈 | 쩜억개 | 2005.10.08
오늘도 어김없이 칡넝쿨처럼, 고구마 줄기처럼,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혀있는 대한민국 명문가문(?)의 인맥에 대해 사정없이 후벼 파 보자.
오늘은 "박정희가"다.
△ 박정희 전 대통령 ⓒ 네이버 검색
대한민국을 19년간 떡 주무르듯이 가지고 놀고, 동서남북 찢어서 국민들 가슴에 상처를 주고, 수 많은 사람들을 눈물 흘리게 하면서, 죽는 순간까지 권력을 놓지 않았던 그 악명 높은 박정희 가문에 대해 알아보자.
한마디로 박정희는 멋대로 마음대로 한 세상 풍미하면서 즐길 거 다 즐기고 해 볼 거 다 해보고 저 세상으로 간 사람이다.
물론 박정희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요즘도 내이션 빌딩 운운하며 그의 경제개발 업적을 지나치게 과대하면서 불가피성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럴 때 늘 인용하는 글이 있다. 좋지도 않은 머리로 귀찮게 한두 명도 아닌 그런 사람들이 억지논리를 늘어놓을 때마다 일일이 대꾸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 것보다 그냥 이런 논문들을 사안별로 딱 정리해놓고 있다가 필요할 때 긁어 붙이면 게임 끝이다.
<연 10% 안팎의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모두 박정희의 공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 값싼 양질의 노동력이 있었고, 집권 초창기 방위비 부담이 크지 않았으며, 1960~80년대에 걸쳐 미국이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린 데 따라 반사이익을 볼 수 있었다는 객관적인 여건을 감안해야 한다.
박정희가 잘해서 경제가 잘됐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지도자의 역량과 국민의 역량을 혼동하는 것이다. 국민의 역량과 시대적 요구에 의해 지도자의 역량이 발휘된 것으로 봐야 한다. 흔히 필리핀 마르코스 정권의 예를 들어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지만, 한국은 필리핀과 달리 우수한 노동력을 갖추고 있었을 뿐 아니라 토지개혁을 단행했다는 좋은 바탕을 깔고 있었다. 여기에 국제적인 역학 구도로 중동 특수를 누릴 수 있었고,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기술과 자본을 도입하는 데 유리했다는 외부 여건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1960, 70년대에 한국이 이룬 경제적 성과에서 박정희의 공은 제한적이다.
박정희 정권 경제정책의 상징인 ‘경제개발계획’이 실상 5·16 쿠데타 이전인 2공화국 시절에 세워졌다는 점도 박정희 개인의 공을 일정하게 제한하는 대목이다.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이를 추진할 경제기획원 설립 구상도 2공화국 때 이미 마련돼 있었다.
한 가지 빠뜨릴 수 없는 대목은 박정희 시대의 경이적인 양적 성장은 정경유착, 각 부문의 불균형 성장, 관치금융 등 어두운 구석을 배경에 깔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1960, 70년대의 경제적 성과에서 차지하는 박 전 대통령의 기여도와 함께 또 하나의 커다란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양적 성장이 세계 경제사적으로도 괄목할 만했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부작용을 고려하면 총점이 마이너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독재를 했지만, 그래도 경제는 잘하지 않았느냐’식의 ‘박정희 신화’는 설 땅을 잃게 된다.
문제는 박정희 시대의 ‘경제 총점’을 똑 떨어지게 매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박정희를 바라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의 크기가 확연하게 달리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순전히 경제적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경제 철학과 가치관의 문제가 개입될 수밖에 없는 사회과학적 사안이어서 경제 총점은 제각각 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박정희 신화의 실체는 "지도자의 역량과 대중의 역량을 혼동한 결과"라는 말이다. 또 시운까지 딱 들어맞았던 것이 주효한 것이다.
서프앙들이라면 전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말이므로 더이상 반복하고 싶지 않다.
다카키 마사오 시절 얘기 제쳐두고, 또한 여순사건 당시의 왔다리갔다리 행각 빼놓더라도, 박정권 19년만을 두고 평가해도 박정희의 죄악은 천지를 뒤덮고도 남을 양이다.
박정희 정권 전반기엔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으로, 후반기엔 긴급조치로 사람들을 조졌다. 물론 긴급조치 시절에도 급하면 국가보안법, 반공법의 미친 칼춤을 추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그래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인혁당 사건이다. 취약한 군사독재정권의 한계를 감추기 위해서, 저항하는 민주화세력을 빨간색으로 채색시켜 국가전복을 기도하는 폭력집단으로 조작하여 일관되게 사형을 선고한 사건이다.

나이 서른도 안 되어 잔혹하게 파멸당한 여정남씨 얘기는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얼마나 고문을 많이 당했던지 사형을 선고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고 한다. 사형을 선고하자 마자 가족에서 알리지도 않은 채 급하게 사형을 집행하고, 처형 후에 시신을 가족에게 인도하지도 않고 서둘러 화장해 버렸다.
석방시켜 주거나 면회시켜 주거나 시신을 인도하면 그 잔학상이 드러나 정권이 파멸될 거 같으니까.
이런 개씹탱구리같은 새끼들이 어디 있나?? 이렇게 죽인 사람이 자그마치 여덟 명.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람이 9명, 징역 12년 이상 선고받은 사람이 20명.
울화통 치민다. 그 딸은 그 죄악이나 빌 것이지 무슨 또 대통령을 하겠다고 설쳐대질 않나, 그 사법살인의 정점에 있던 자의 사위가 대한민국 최고 귀족에, 거대 족벌 언론사 사장이라니....
나라꼴이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박정희가 이데올로기 사슬로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억울하게 몰아가지고 남의 인생 조지고, 그 집안 풍비박산 시킨 경우가 어디 한 둘인가?
박정희정권은 국가테러리즘의 전형이었다. 제일 웃긴 것은 박정희가 스스로 깡패보다 더한 짓을 했으면서 깡패소탕 운운한 것이다. 기가 차다.
박정희가 깡패들을 잡아서 바람직한 인간으로 선도하고,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재창조할 수 있도록 도와준게 아니라 무식하게 군사적 규율을 살인적인 폭력으로 강요하면서 철저하게 인권을 유린했다. 깡패보다도 못한 국가적 폭력을 자행했다.
그래서 새사람 만들었나? 이후 또 다시 깡패조직을 권력의 말단 행동대원으로 끌어들이지 않았는가? 자신들이 필요할 때는 깡패를 써 먹고, 깡패짓 해도 되고, 사회적 공포분위기를 조장하기 위해 국민재건 운운하면서 끌고 가서 마구 부려먹고 마구 때린 거 아닌가?
전두환이도 나중에 그거 흉내 내면서 사회정화를 떠벌린 거 아닌가?
대가리에 들어있는 군국주의의 잔재가 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지금도 "그게 사나이답다"면서 침 질질 흘리는 사람들은 뭐야? 침 닦아!!! 전사모, 뭐야?? 박사모, 누구야??
그 군홧발 아래 억울하게 희생당했을 힘없고 가엾은 약자들의 고통은 왜 안 보나?
유신체제 7년동안 국가보안법, 반공법, 긴급조치 위반으로 엮어서 감옥으로 끌고 간 청년 학생만 무려 1197명, 노동자 농민 275명, 성직자, 종교인 132명, 언론인 문인 84명, 선생님 52명, 정치인 70명, 기타 등등 1000명..........
유신체제 하 양심수 총 2704명.
△ 김지하 시인 ⓒ 네이버 검색
김지하 시인이 당시 이렇게 말했다.
" 반공법 제4조의 상투적, 견강부회적, 무차별적, 모략적 적응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사상적, 정신적 성장과 발전을 빼앗아 온 최대의 질곡이며 우리 민중으로부터 '말의 자유'를 빼앗아 숨막히는 암흑과 침묵의 문화를 보급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부패특권의 압제권력을 유지해 온 최대의 억압의 무기이다. 나는 이에 대하여 자유의 이름으로 머리 끝부터 발끝가지 치떨리는 분노로 항의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개성의 허용,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온몸으로 요구한다. "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가 7일 오후 국정원 국가정보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혁당 민청학련 사건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야말로 박정희정권은 중앙정보부를 앞세워 인권유린의 구조화를 자행하여 한국사회 전체를 군사문화가 지배하는, 반민주적 독소로 가득찬 사회로 만든 원흉이다.
박정희 덕분에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할 국가기관들이 전부 인권유린의 도구로 전락하였고, 아직도 그 때문에 국민적 신뢰를 되찾지 못해서 고충을 겪는 것이다.
극악한 고문도 성행하였다. 물고문, 전기고문, 수면방해, 구타, 천장에 거꾸로 매달기, 손가락 사이에 볼펜을 넣어 비틀기, 겨울에 옷을 벗기고 찬물에 집어 넣기, 불이나 담배불로 지지기, 비녀꽂기, 통닭구이, 강간.윤간.기타 성고문, 물 속에 머리 처박기, 고춧가루물을 코에 붓기, 원산폭격, 빈대붙기, 칠성판에 묶고 구타하기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박사모?? 박정희의 전면적 이데올로기 공세에 흡수된 거냐? 살인적인 인권탄압의 실상을 모르는 거냐? 망각의 해악인가? 민주주의가 그렇게 불만인가? 뭐야, 도대체.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조용수 사장은 왜 죽었고, 황태성 사건의 진실은 무엇이고, 동백림 사건, 남민전 사건은 뭐야? 멧돼지는 어디로 갔나?
젊은 사람들이 왜 멀쩡히 있다가 감옥에서 옥사를 그렇게 많이 했는지 생각해 봐라.
영화 "실미도" 못 봤나?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무슨 부정선거 고발했다고 열차에서 떠밀어서 죽이지 않나, 노동자들 사이에서 노동운동하는 선교사에게 독약을 먹이질 않나, 대학교수를 잡아다가 창밖으로 집어 던지질 않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억울하게 공권력에 의해 희생당했다고 결정된 사안만 보더라도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박근혜가 저렇게 정치판에서 설쳐댈 수가 없는 거다.
"인혁당·민청학련 사건은 정권의 조작"
18시간내 사형집행 박정희 개입 암시
국정원 진실위 7일 조사결과 발표...
'북파 공작원'까지 남파간첩으로 둔갑
천주교인권위원회 | 오마이뉴스 김영균 기자 | 2005.12.07
이건 악마 중에도 대마왕이다, 대마왕. 베엘제불.... 악마를 사랑하는 것과 같은 박정희 향수라는 것은 결국 자기 가치파괴로 귀결될 게 뻔하다.
박근혜라는 여인도 불쌍한 여인이다. 박근혜 정도되는 사람이 이런 사건들의 진실에 대해 전혀 모르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자신의 부친이 저지른 죄업을 모른 척 하면서, 또는 두둔하면서 그 죄를 씻기 위해 용서를 빌기는커녕 가해자 편에 서서 또 다시 민주세력에게 상처를 가하고 있는데 이 또한 불행한 자기 가치파괴로 결론이 날 것 같다. 그러니까 박근혜도 박정희에 의해 빚어진 또 하나의 희생양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박정희는 불법적인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탈취한 후, 탈취한 권력을 악용해 끊임없이 추악하게 정권 연장을 하면서 죽는 순간까지 최고권좌에 앉아 있었다.
물론 그 막강한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가문도 엄청나게 번성시켰다.
무슨 박정희가 검소하고, 역대 가장 청렴한 대통령이고, 친인척을 멀리했다는 소리들을 그렇게 하는데 다 좆까는 소리다. 죽을 때까지 이 나라에서 천황으로 살았는데 무슨 소리하는 건가? 정수장학회 얘기는 듣지도 못했나?
그 문란했던 사생활을 보고도 검소하고 청렴하다는 얘기를 그렇게 자연스럽게 할 수 있나? 친인척을 멀리하기는 뭘 멀리해? 쓸 수 있는 사람은 다 끌어다 한 자리씩 줬다.
당시 박정희 친인척비리가 불가사의하게도 하나도 없었다는 얘기를 서슴지 않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있어도 잡을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는 걸 몰라??
우선 박정희의 딸 박재옥부터 알아보자. 사람들이 박근혜가 큰 딸이라고 알고 있는데 사실은 박재옥이다. 박재옥은 박정희의 첫째 부인 김호남이 낳은 딸이다. 박재옥은 한병기라는 사람과 결혼했다.
한병기는 1931년 평남 안주 출신이다. 홍익대학교를 졸업하였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집권을 하자마자 불과 30살의 나이에 별 경력도 없이 주뉴욕총영사관 영사가 되었다. 35살의 나이에 건설공제조합 이사장이 되기도 했다. 선주협회 회장을 지내고 박정희 시절 설악관광케이블카 회장이 되어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유엔대사, 캐나다대사를 역임하기도 하고, 공화당 총재특보를 지내기도 했다.
박정희가 죽자마자 권력에서 멀어졌다. DJP연대로 사촌 동서인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득세하자, 방송개혁위원회 위원, 국무총리 자문위원장이 되는 등, 조금 고개를 들었다.
이래도 박정희가 친인척을 멀리한 건가?
그 다음에 박정희의 형 박동희의 아들 박재홍을 보자. 그러니까 박정희는 박재홍의 작은 아버지다.
1941년 경북 구미 출신이다. 대구상고, 고려법대를 졸업하였다.
28살의 나이에 포항제철 행정실장이 됐고 32살의 나이에 동양철관 회장이 되었다. 이거 정상적인 건가??
민정당, 민자당에서 국회의원을 4번씩이나 해 먹었다. 그 후 자민련으로 갔다가 다시 한나라당으로 갔다가 국민회의로 건너오는 등 이상한 정치행각을 보여주었다.
또 박정희의 또 다른 형 박상희의 아들 박준홍을 보자.
1947년생이다. 경북 구미 출신이다. 계성고, 경희대 정외과, 미국 조지워싱턴대를 졸업하였다. 김종필의 부인 박영옥이 박준홍의 누나다.
불과 서른 살의 나이에 1급 관리관 정무조정실장이 되었다. 요거 요즘같은 대명천지에 가능한 얘긴가? 그러더니 32살 때 그 막강한 대한축구협회장이 되었다.
박정희 사망으로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어 방황하다가 매형 김종필이 만든 자민련에 들어가서 지금도 자민련 경북 구미갑 지구당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촌형인 박재홍과 맞붙기도 해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박정희의 친인척 가운데 쓸만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안 썼을 뿐이지 쓸만한 사람은 다 갖다 썼다는 걸 알 수 있다.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의 오빠, 그러니까 박근혜의 외삼촌인 육인수 같은 경우에도 학교 교사로 있다가 박정희가 쿠데타에 성공한 후에 승승장구하면서 5선 의원 씩이나 지낸 거 아닌가?
그 육인수의 사위 이석훈은 청주 MBC 사장을 지내고, 충청일보 사장을 거쳐서 현재 일신산업 회장이다.
김종필 같은 경우에도 박정희가 끔찍이 생각했던 형 박상희의 딸인 박영옥의 남편 아닌가? 박정희의 처조카 김종필이 이후락 등과 함께 80년 신군부에 의해서 부정축재한 재산이 환수조치됐는데 그 총 규모가 887억원이다. 25년 전에 887억원이면... 이건 계산이 불가능한 돈이다.
이래도 박정희가 깨끗하고 청렴한가? 그걸 몰라서 가만히 놔 둔 건가? 박정희 개인은 절대권력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굳이 축재할 필요가 없었을런지는 모르겠다.
박정희 덕이 아니라면 박근혜가 어떻게 정수장학회를 지배하고 있나? 정수장학회가 말이 장학회지, 그 규모가 1조 300억원에 이른다. MBC의 30%가 정수장학회 소유다. 부산일보도... 경향신문 사옥 부지도...

전 육영재단 이사장 박근령, 당시 박서영으로 개명하여 활동했다.
△ 육영재단 박서영 이사장 ⓒ 네이버 검색
박정희의 또 다른 딸 박근영(박서영으로 개명)은 또 어떻게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나? 육영재단도 수천 억원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이 무슨 수로 코스닥에서 한방에 46억원 짜리 대박을 치나?
이게 청렴한 대통령의 표상이라는 박정희의 모습이다.
게다가 시골에서 농사만 지었다던 박정희의 형 박동희의 딸 박재선을 의사와 결혼시키고, 형 박상희의 둘째 딸 박계옥의 남편 김용태를 그 막강한 대통령 경호실에서 근무하도록 했다.
그 뿐이랴!!!!
박상희의 세째 딸 박금자를 총리실에서 근무하는 반기언과 혼인시키고, 결정적으로는 박상희의 막내 딸 박설자를 벽산그룹 창업자 김인득의 아들인 김희용과 결혼시켰다. 김희용은 현재 벽산계열인 동양물산기업 대표이사 회장이다.
이 박설자로 말미암아 박정희 집안이 드디어 그랜드 서클 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 박정희의 조카 박설자의 남편 김희용의 형 김희철이 현재 벽산그룹 회장이다.
김희철의 부인, 그러니까 박정희 조카 박설자의 동서가 바로 LG그룹의 한 축인 삼양통상의 창업자 허정구의 딸 허영자다. 이 허영자의 조카사위, 그러니까 허영자의 남동생의 사위가 바로 조선일보 후계자로 알려진 방준오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방향으로 한번 가보자. 참 웃기는 거 발견했다. 박정희 조카 박설자의 동서인 허영자의 오빠가 현재 삼양통상 회장인 허남각이다.
이 허남각의 딸 허정윤이 얼마 전에 정대호라는 청년과 결혼을 했는데 이 정대호가 그 유명한 황해도 재령의 대지주의 아들인 강원산업 창업자 정인욱의 손자이자, 현재 강원산업 회장인 정문원의 아들이다.
이 정문원의 부인 최금자의 언니가 최금숙이다. 최금숙이 누구냐? 바로 얼마 전에 형제의 난으로 물러난 두산그룹 회장 박용오의 부인이다.
게다가 정문원의 동생이 정도원인데 정도원에게 두 딸이 있다.
큰 딸 지선이는 기아자동자 회장인 정의선과 결혼했다. 정의선은 누구냐? 현대자동차 정몽구의 회장의 외아들이자 정주영회장의 손자다, 이 말이다.
작은 딸 지윤이는 박성빈이라는 청년과 결혼했다. 이 박성빈은 또 누구냐? 포항제철 박태준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이 말이다.
그러니까 포철 박성빈이랑 현대 정의선이랑 동서가 된다. 따라서 현대그룹이 철강산업을 하려고 부지까지 선정하러 다니다가 포기한 배경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이 박성빈을 좀 파헤쳐보면 아주 재밌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서 서프앙들에게 미안해진다. 양해 바란다.
박성빈은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있다가 요즘 무슨 통신 솔루션 업체인 사운드파이프 코리아 대표이사로 있다.
이 회사를 가만히 보니까 무슨 다국적 기업인 것 같은데 국내 대리점을 영업하는 듯 하다. 전자신문같은 걸 보면 꽤 잘 나가는 듯 하다. 잘 나갈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사운드파이프에서 무선랜 환경을 구축했다는 아산병원은 현대 계열 아닌가??
박성빈도 돈을 많이 가지고 있다. 박태준이 국무총리직에 있을 때 드러난 박성빈의 부동산만도 강남구 역삼동의 170평짜리 카센터와 강남구 신사동의 빌딩 등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한남동에 빌라도 있었다.
여기서 멈추면 고구마 줄기라고 할 수 없다.
박성빈의 매형 김형수를 주목해야 한다. 김형수는 박태준의 한국화가 딸 박유아와 결혼을 했는데, 박유아는 본래 변호사 고승덕과 살다가 헤어졌다.
이 김형수는 또 이력이 만만치 않다. 한국맥도널드 사장과 국내에서 일본 도요다 자동차 렉서스를 수입판매하는 렉서스 케이모터스 대표이사다.
그런데 이 김형수의 부친이 그 유명한 동일고무벨트 창업자인 김도근이다. 이 김도근의 이력을 가만히 살펴보면 정치지향적인 것이 분명하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등등 골 때리는 이력이 꽤 많다.
문제는 김도근의 큰 아들이자 김형수의 형인 김진재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박정희시절부터 여기저기 부산지역을 마구 쑤시고 돌아다녔다. 청년회의소니 부산 싸이클 연맹이니 뭐니 닥치는대로 자리라는 자리는 마다하지 않았다. 총력안보 부산시 협의회 특별위원,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부산시 청소년 선도위원도 맡았다.
부산 동래구 새마을지도자연합회 고문직도 맡았다.
열심히 하면 위에서 알아보는 법, 전두환이 급조한 민정당 간판을 달고 11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을 막론하고 내리 5선의원이 되었다.
△ 한승수 ⓒ 네이버 검색 이 김진재의 아들인 동일고무벨트 기획이사 1972년생 김세연이 그 유명한 춘천 한승수의 딸 한상은과 결혼을 했다. 그러니까 왜 한승수가 무소속으로 있다가 뒤늦게 또 다시 한나라당으로 들어갔는지 답이 나온다.
그런데 이 괴상한 상황을 우리 서프앙들이 알아야 한다. 이 한승수가 박정희의 부인인 육영수의 조카 사위다. 한승수의 장모가 육영수의 큰언니 육인순이다. 그러니까 박근혜에게 한승수는 사촌 형부다. 한승수의 장인은 일제 만주국에서 관리를 지낸 홍순일이다.
이 박정희의 동서 홍순일의 사위들이 세명이나 국회의원이 됐다. 예전에 서주산업이라는 회사에서 나온 혓바닥 시뻘겋게 되는 아이스 바를 다들 먹어 봤을거다. 그 서주산업의 회장이 바로 국회의원을 지낸 홍순일의 다섯째 사위 윤석민이다.
한승수의 부인인 육영수의 조카 홍소자가 혜원여고 교장을 지냈는데 알아보니까 혜원여고 이사장 윤석민의 처형이네?? 헐... 신문에는 그런 관계가 안 나와서 참 재미가 없다.
홍소자랑 열린우리당 이미경의원이랑 친하게 지내지 않기를 바란다.
또 만주지역에서 엄청나게 크게 농장사업을 벌였던 천재라는 장덕진이라는 사람이 육영수의 언니 육인순의 사위다. 이 사람은 박정희정권하에서 장관도 지냈다. 분명히 장덕진과 한승수가 춘천고 동문으로 친분이 있어서 동서가 된 거 같다.
전국민이 뻔질나게 소풍가는 한국민속촌 회장 정영삼도 육인순의 사위로서 육영수의 조카 사위다.
어쨌든 이렇게 오만가지 요직은 다 해 먹었는데 무슨 박정희가 친인척을 등용하지 않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한승수의 아들 한상준은 얼마 전 이희현이라는 아가씨와 결혼을 했다. 내가 깊이 파보니까 이희현의 아버지, 그러니까 한상준의 장인은 유니드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이화영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런 가보다 하고 있었는데 웬걸??
이 이화영이라는 사람이 마지막 개성상인이니 뭐니 하면서 언론에서 띄워주는 성북동에 사는 동양제철화학그룹 명예회장 이회림의 아들이었다. 다들 봐서 알겠지만 ITV 폐업할 때 그 모습이 마지막 개성상인의 모습인가?
내가 그동안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 후원회장 이회림이 왜 그랜드 서클 안에 안 들어오나, 의아했다. 그러니까 이회림과 한승수가 사돈을 맺은 거다.
어쨌든 한승수같이 유엔총회 의장까지 지낸 학벌 좋고, 경력 좋은 사람이 부인까지 데리고 가서 박정희를 추모하고 애도하고 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 깜빡 속아넘어가겠다. 여러분, 한승수는 박정희의 조카사위에요, 조카사위!!!!!!!!!!!!!!!!!!!!!!!!!!!!!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아까 언급했던 박태준의 사위 중 튀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박태준의 딸 가운데 디자이너인 박경아가 있는데 전두환의 아들 전재용과 이혼을 하고, 김병주라는 사람과 결혼을 하였다.
김병주는 1962년생인데 얼마 전까지 미국 칼라일 그룹 아시아지역 회장 겸 이사였다.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를 졸업하였다.
김병주는 국민의 정부시절 자민련이 연정을 할 즈음 박태준이 총리가 되기 직전에 칼라일 코리아 사장이 되었다. 김병주는 쌍용정보통신을 꿀꺽 하더니, 5000억원을 쏟아부어 한미은행을 먹었다. 하나은행마저 잡아먹기 위해 공을 들였다.
한미은행을 4억달러에 사서 씨티 은행에 27억달러에 팔아먹었다. 물론 그 이익은 미국 칼라일의 몫이었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외국계 인사로 초대된 것으로 봐서 한국인이기 보다는 미국인으로 추정된다.
요즘 칼라일 간부 5명과 `MBK 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를 만들어서 돈을 긁어 들이고 있다. MBK는 마이클 병주 김의 약자다. 싱가포르 정부투자기관에서 5억 달러를 끌어들였고, 캐나다 교직연금에서 2억 5천만 달러를 끌어들였다. 삼성생명, 대우정밀 등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이 인물은 민주개혁세력이 끊임없이 눈여겨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로 다시 돌아가자.
지금 청렴하다는 박정희의 둘째 형 박무희의 아들 박재석은 연필장사를 하다가 박정희 덕분에 국제전기기업 회장이 되었다. 자민련 부총재를 지냈던 조부영같은 사람이 거기 이사출신인 걸 보면 대단한 은혜를 입은 거다.
게다가 박무희의 또 다른 아들 박재호는 벽돌공장에 다니다가 박정희가 집권한 후 동양육운 회장이 되었다.
상전벽해도 이런 상전벽해가 있나??
박정희가 친인척에게 엄했고 공사구별이 철저했다는 소리는 다 뻥이다. 말이나 못하면 얄밉지나 않겠다. 이상과 같이 해 줄만큼 다 해주고 해먹을 만큼 다 해 먹었다.
대한댄스스포츠실업연맹 총재된 박근령
한국경제신문 | 2009.06.05
지난 6월 5일, 이승만의 사저인 이화장에서 박근령씨가 룰라의 이상민과 대한댄스스포츠실업연맹(KDBU, Korea Dance Sport Business Corporation Union)을 창립...발기인대회를 가졌다...부총재는 박주영, 이사장은 정옥영씨가, 가수 '룰라'와 광고 모델 엔젤 '조수아'를 홍보대사로 임명...
한국애견협회 명예회장 박근령씨 한국애견협회 | 2007.04.05
영남대학교 관련 뉴스

영남대 부정입학비리로 이사사퇴 후 인터뷰 기사 조선일보 1988.11.10
영남대 6개월새 국비 1000억 유치 성과
세계일보 | 대구=전주식 기자 | 2009.07.22
영남대 ‘친박근혜’ 이사 선임 한겨레 박영률 기자 2009.07.13
‘박근혜 사실상 복귀’ 영남대 날개 달까 동아일보 대구=이권효 기자 2009-06-20
"돈 한푼 안낸 박정희, 아직도 영남대 교주" - 오마이뉴스 김지은·이종호 2007.06.26
"박근혜, 이사 시절 부동산 처분 과정서 비리 의혹"... 대구대 설립자 유족 검증요구
박근혜 영남대 재접수 초읽기? 한겨레21 제756호 안수찬 2009.04.17
관선이사 체제 끝내며 친박 인사들로 신임 이사회 꾸릴 움직임… 학내 일각선 “비리 반성 없어” 반대..사학비리의 시초… 89년부터 관선이사 체제..어느새 잊혀져가고 있지만, 영남대는 사학비리의 ‘시초’였다. 관선 임시이사가 재단을 운영한 것이 올해로 20년째다. 1988년 사학 사상 처음으로 국회 국정감사를 받았다. 당시 영남대는 부정입학, 장학금 전용, 회계부정, 부동산 처분 비리 등이 불거지면서 사학비리의 종합판을 방불케 했다. 결국 이사진 전원이 물러났고, 1989년 2월 당시 문교부가 임시이사를 선임하면서 관선이사 체제가 시작됐다.
[아침을 열며] 박근혜 바로보기
경향신문 | 원희복 전국부장 | 2009.08.02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박근혜씨다. 그는 자산이 10조원이니 13조원이니 하는 MBC 주식의 30%를 가졌고 지방 유력신문인 부산일보의 실질적 사주이며, 무려 264만㎡(80만평)의 캠퍼스를 가진 대학교도 사실상 그의 소유다. 여기에 경향신문사 부지도, 현재 동생끼리 운영권을 놓고 싸우고 있는 서울시 능동의 육영재단도 모두 박씨의 아버지가 남긴 유산이다.
박근혜측은 신문사에 정정을 요구했으나 듣지 않자 이 칼럼 내용이 '허위보도'라며 서울중앙지법에 1억 명예훼손 정신적 위자료 소송. 비겁한 언론들은 실체에 대한 분석은 할 생각 하지 않고 명예훼손 소송에 대한 뉴스만 단문으로 보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경향신문 상대 소송 YTN 사회 | 2009.08.17
이 소송내용이 사실여부를 규명하기 보다는 사실을 공개해서 명예를 실추 당했다는 소송같습니다만. 추이를 지켜봐야겠습니다. 소송에 대해 언론들이 단신으로만 취급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알길이 없습니다.
언론을 통해서만 보더라도 이렇게 다양한 자료들이 널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중동은 박근혜가 재산을 사회환원했다는 형식적인 면만 부각하기에 혈안 입니다. 단지, 박근혜를 토사구팽해야만 할 때, 한나라당에 대선후보가 남성이 있을 때는 이명박과의 경선시에도 그랬지만, 박근혜의 비리를 관련자들의 입을 통해 조금씩 흘리고 있을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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