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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언숍’ 노조원들의 월급에서 한국노총 출신 국회의원에게로,
정치후원 '의사 없는’ 정치후원금 수억원 조성
한겨레21 제736호 | 최성진 기자 | 2008.11.21

“내가 버스 운전만 18년을 했는데,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이런 식으로 특정 정당 국회의원들의 정치후원금을 걷는 건 강탈입니다.”(경성여객 ㄱ씨)
 
“배차실에 명부를 그냥 놔뒀을 때는 전체 137명 조합원 가운데 6명 정도밖에 서명을 안 했어요. 나중에 노조 간부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내라고 하니까 30명 정도 한 건데, 이걸 자발적으로 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태능교통 ㅇ씨)

한겨레21 조승연

버스기사 주머닛돈이 한나라당 쌈짓돈.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서울시 버스기사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이다. 부적절한 정치후원금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와 정책연대를 맺은 한국노총 산하 서울시버스노동조합(버스노조)이 강성천 의원 등 한나라당 일부 국회의원들을 위해 1만7447명의 버스회사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수억원 규모의 정치후원금을 조성한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몇몇 버스회사 노조 간부들은 버스기사들의 정치적 의사를 무시한 채 10만원씩의 후원금 납부를 강요했다는 주장도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버스노조는 각 버스회사로부터 전달된 정치후원금을 위해 별도 계좌를 마련해두고 있어, 정치후원금 전달 과정에서도 불법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업무·고용 그 밖의 관계를 이용해 부당하게 타인의 의사를 억압하는 방법으로 기부를 알선하는 행위와,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정치후원금을 모아 특정 정치인에게 전달하는 것은 모두 불법이다.

의사 억압·노동조합 전달 모두 불법

144번 버스 등을 운행하고 있는 삼양교통 배차실에 정치후원금에 관한 대자보가 등장한 것은 10월18일이었다. 버스노조 위원장을 지낸 강성천 의원을 비롯해 김성태·이화수·현기환 등 네 명의 한국노총 출신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을 위해 정치후원금을 내달라는 내용이었다. 동시에 배차실에는 ‘정치기부금 명단’이 적힌 명부도 출현했다.
명부를 바라보는 버스기사 ㅂ씨의 마음은 불편했다. 연말 소득공제를 통해 돌려받는다고는 하지만 11월치 월급에서 10만원이라는 돈이 빠져나가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게다가 노동자들과는 거리가 한참 먼 한나라당 국회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몰아주자는 것도 어처구니없었다.

그러나 명부를 애써 외면했던 ㅂ씨도 김영남 버스노조 삼양교통지부장을 피할 수는 없었다. 10월 말 동료들과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ㅂ씨에게 김 지부장이 다가왔다. “이런 것도 안 하고 근로조건이 개선되기를 바라냐. 아무리 못해도 100명은 채워야지. 기부해도 나중에 돌려받는 거니까 좀 해줘.” ㅂ씨가 듣기에는 핀잔이었고 압력이었다. 그는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명단에 이름과 함께 ‘일십만원’이라고 적어야 했다.

“부자 정당에 왜…” 조합원들 불만

같은 회사에 다니는 ㅇ씨 역시 “조합 지부장이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내라고 하면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며 “우리 회사 조합원들이 200명 정도 되는데 절반 이상은 서명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급여일이었던 11월12일, 명부에 이름을 올린 100여 명의 급여계좌에는 월급에서 10만원씩을 뺀 금액이 입금됐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10월 중순 서울 우이동 삼양교통 배차실에 등장한 대자보. 버스기사에게 한나라당 정치후원금 납부를 독려하고 있다.  
 
서울 면목동에 있는 경성여객에도 비슷한 시기에 똑같은 대자보가 붙었다. 노조 간부가 직접 ‘정치기부금 명단’ 에 서명을 요구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명부에 서명하고 월급에서 10만원이 공제된 조합원은 전체 150여 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40대 후반의 경성여객 버스기사는 자신의 월급 일부가 ‘부자 정당’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한테 10만원이라는 돈은 적은 금액이 아닌데, 더구나 강성천 의원은 돈이 많아서 경찰에 도난 신고도 제대로 못한 사람이잖아요. 다들 ‘그런 사람에게 우리가 돈을 보내는 건 상당히 웃기는 일’이라는 거예요.” 그는 “코미디도 아니고…”라며 말을 잊었다.

한국노총 핵심 관계자에 따르면 버스노조는 10월18일부터 11월14일까지 이런 방식으로 수억원 규모의 정치후원금을 조성했다. 당장 삼양교통과 경성여객만 해도 각각 1천만원 안팎을 모았고, 납부 실적이 가장 좋은 ○○운수의 경우 조합원 220명이 2천여만원의 정치후원금을 냈다. 참고로 한국노총 버스노조에 소속된 버스 운행업체는 모두 68개, 버스노조 지부는 72개다. 일부 업체가 합병되면서 노조 통합이 이뤄지지 않아 업체 수보다 노조 지부 수가 조금 더 많다.

버스노조가 짧은 기간 특정 정당 국회의원을 위해 엄청난 규모의 정치후원금을 조성할 수 있었던 배경은 뭘까. 해답은 한국노총 산하 각 버스노조 지부의 독특한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직 버스 운행업체 임원의 증언이다. “유니언숍의 폐해죠. 버스노조에서는 버스기사들이 노조에서 제명되면 곧바로 해고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버스노조 산하 각 단위노조 간부들은 실질적으로 인사권까지 행사하고 있는데, 버스기사들이 노조의 눈치를 안 볼 도리가 있습니까.”

유니언숍이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제도를 말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업체에서는 노조가 버스기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이들 노조 간부들은 노선과 차량 배정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기도 한다.

서울 구산동 선진운수의 ㅇ씨는 노조를 ‘상전’이라고 표현했다. “노조는 회사의 노무관리 부서라고 보면 됩니다. 노조 간부들이 자기에게 잘 보이거나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는 혜택을 줍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스페어로 빼거나 곧 폐차할 차만 내주고요. 노조가 우리 목줄을 쥐고 있는 겁니다.”

‘스페어’(혹은 SP)란 매일 일정한 시간에 지정 차량을 운전하는 ‘고정 승무’와 달리 다른 버스기사들의 휴가 등으로 결원이 발생하면 그때그때 빈자리를 메우는 방식의 근무를 말한다. 익숙하지 않은 차량을 다뤄야 하기에 사고율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생활리듬이 깨지는 것도 피할 수 없다. 버스기사라면 누구나 피하고 싶은 근무가 스페어다.

버스노조가 승무 조정 등 유·무형의 압력을 행사해 거액의 정치후원금을 모았다는 주장에 대해 노조 쪽에서는 강하게 반박하고 있다. 버스노조 삼양교통지부의 김영남 지부장은 “강제로 한 게 아니라 (후원금) 명부를 배차실에 놔뒀을 뿐인데 이틀 만에 절반에 해당하는 100여 명 정도가 서명했다”며 “내가 볼 때 다들 근로조건이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서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후원금 모금사업을 기획한 한국노총 버스노조의 이태주 정책기획국장도 “일부 사업장에서는 호응이 많아 지부장이 컨트롤하기도 한다”며 후원금 강요 논란을 반박했다. 일부 노조 지부에서는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정치후원금을 내겠다는 사람이 많아서 오히려 지부장이 더 이상 못 내도록 했다는 주장이다.

“처음 하다 보니…후원금 되돌려줄 수도”

이 국장은 불법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정치후원금 전달 방식을 묻자 “정치자금법에는 노동조합은 못하게 돼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방법을 안내하면 조합원들이 직접 해당 국회의원 계좌로 부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급여에서 공제된 경우도 있는데 조합원들이 은행에서 송금한다는 게 가능한 이야기냐”고 따져묻자 그는 “사실 버스노조 본부에 특별계좌를 하나 만들어놨는데, 처음 이런 사업을 하다 보니 합법적으로 후원금을 전달하는 것이 난제로 남아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최악의 경우 조합원들에게 그들이 납부한 정치후원금을 되돌려준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원문 보기 한겨레21 제736호 [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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